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‘갑자기’와 ‘어쩌다 보니’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. 생각해 보니 인생을 항상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 같다.
항상 순간의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던 것 같다. 그 몫을 감당할 책임들은 미래의 나에게 맡긴 채.
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덴마크에 있는 에프터스콜레를 가려고 했다. 학교는 나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. 그러다 ‘갑자기’ 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, 입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.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입시를 마치고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학과에 진학했다.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는데, 넓어진 세상을 보고 ‘갑자기’ 어디든 다른 나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렇게 중국으로 가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. 그리고 학교를 싫어했던 나는 ’어쩌다 보니‘ 또 학교를 간다.
사실 여행 중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한 나라는 영국이었다. 또 개인적으로는 미국을 좋아한다. 하지만 중국이 된 이유는 금전적 그리고 언어적인 이유가 크다. 나에게는 어마 무시한 4년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고, 어릴 적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시던 아빠를 따라 배운 중국어와 인연이 닿았다. 종합해 보자면 대체로 큰 나라들을 좋아한다. 도시도 큰 도시를 좋아하고.
“이국에서 삶은 지면 위의 허공 속을 걷는 것과 같다.”
유학 초기, 쿤데라의 이 문장은 지겨울 정도로 나를 따라다녔다. 마치 이 짧은 문장 안에 내 영혼이 갇혀버린 느낌이었다. 눈앞에는 화려하면서도 오래된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,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. 타인의 언어도, 나 자신의 언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그 시절, 나와 세계 사이에는 투명하고 거대한 유리벽이 서 있었다. 정말로 지면 위의 허공을 걷고 있는 것처럼 가난과 절망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이국에서의 시간.
<아무튼, 로드무비>
나는 사주를 꽤나 신뢰하는 편이라 자주 보러 다닌다. 사주를 볼 줄은 모르지만 내게 역마살이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. 어릴 적부터 10번의 이사를 다녔고, 11개의 집을 거쳐오면서도 아직 이사가 좋다고 말할 정도면.. 또 평생 여행만 하며 살 수 없을까 고민할 정도로 여행을 사랑한다. 어쩌면 이동은 나에게 필수불가결한 행위이다.
이사를 많이 다녀서인지 집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. 내향적이지만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진 않는 편으로, 내 집 마련의 꿈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. 물론 능력도 없지만. 얼마 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가장 좋은 기억을 지닌 집이 됐으면 좋겠다.
대체로 핸드폰을 보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일을 할 때는 노래를 듣는다. 그리고 약간 의무적으로 책을 읽거나 기록하는 시간을 가진다. 최근엔 영어 없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영어와의 접촉을 늘리는 중이다. 그 일환으로 길모어 걸스를 정주행하고 있다. 한동안 정을 못 붙여 1화만 반복하다 드디어 모녀와 친해졌다.
좋아하는 드라마를 나열하자면 길모어 걸스, 모던 패밀리, 섹스 앤 더시티, 가십걸...이 있다. 지극히 현실적이라 비현실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좋아한다. 그리고 그 배경은 미국일 것. 다들 시즌이 많아서 한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알던 사람들과 멀어진 기분이 들곤 한다.
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생각을 좋아한다. 졸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살갗으로 느껴지는 현실에 소스라쳤다.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에서 타협점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. 쓸모없는 일, 의미 없는 일을 좋아하지만 거기서 의미를 찾는 일 또한 좋아한다.
공정현. 누가 봐도 한자로 만들어진 이름 같지만 순수 한글 이름이다. 엄마가 얼마 전 갑자기 “개명할래?” 라고 물었다. 아시는 선생님께서 내 이름 뜻을 물어봤는데 생각해 보니 딱히 없었다는 게 그 이유다. 스스로도 이름을 어색하게 느끼지만 바꾸고 싶은 이름이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.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영어로 성 4글자, 이름 10글자인 이름을 안고 살아가기에는..